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판필로프의 28인 (문단 편집) == 배경 == 이반 판필로프 소장이 지휘하던 제316소총병사단 예하 제1075소총병연대의 1개 소대[* 2대대 4중대 소속]의 장병 28명은 독일 제11기갑사단의 전차 54대를 앞세운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1941년 11월 16일 점심에 포병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독일군 선발대를 격퇴시켰으나, 이내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야포 4문이 전부 파괴되어 포격 지원이 끊긴다. 독일군은 전열을 정비해 저녁에 다시 공격을 재개했다. 더 이상 화력지원도 받을 수 없고 병력도 부족하고 무장도 빈약해[* 45mm 대전차포 1문, [[PTRD-41]] 2정, [[맥심 기관총#PM M1910|맥심 기관총]] 1정, 각종 소화기와 수류탄, 급조 대전차수류탄, 화염병 등] 이는 가망이 없는 싸움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소대원들이 죽을 것을 각오하고 분투한 결과, 저녁까지 도합 독일군 전차 18대를 무력화시키고 보병 7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뒀다. 결국 28명의 소련군 장병들은 전원 전사했으나, 독일군은 막심한 피해를 입자 방어하는 소련군의 규모를 과대평가하고 퇴각했다. 덕분에 소련군은 재정비할 시간을 벌게 되어 [[모스크바 공방전|모스크바 방어]]에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 전투 이후 지휘소에서 독일군의 포격으로 사망한 판필로프 소장과, 28인의 결사대원들은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 전투에서 최후까지 분전한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알마티]]에는 판필로프 공원이 세워져 그들의 동상 앞에 꺼지지 않는 불길이 지금도 타고 있다. 또한 모스크바 찬가 3절에서 노래되며 승전기념일 때마다 불려지고 있다. 특이사항으로 소대원 대부분이 30대 초~중반의 나이대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